DAY 0
들어가면서
여행 준비

한 달 전쯤에, 아는 형들이랑 얘기하다가 갑자기 “일본에 가자” 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 때는 어느 정도 반농담 반진담으로, “형이 가면 나도 간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는데 정신 차려 보니 비행기 표를 끊고 숙소를 예매하고 여행지를 선정하고 교통편을 알아보고 있었다. 음?
교통편 탐색과 숙소 발품 팔기 등 여행에 빠삭한 D형과 리뷰 탐색하기에 진심으로 임했던 J형, 나, 그렇게 세 명이서 3박 4일간의 일본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여행을 목전을 둔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출발 비행기가 아침 7시 반이라는 사실이었다.
나, D형, J형은 서로서로 한 10km 내외 정도 떨어져 있는 지역에 흩어져 산다. 게다가 출발 비행기 체크인 시간을 맞추려면 2시간 전인 5시 반쯤에는 도착해야 할 터였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다가 이런 방안들을 내게 된다.
- 1안: 리턴프리 (편도 카셰어링)
- D형이 새벽 4시에 차를 렌트해 순서대로 나, J형을 픽업하고 공항으로 가는 방식
- 가격은 인당 1만원 내외, 도착 시간은 5시 45분 전후로 예상
- 2안: 공항버스
- 각자 집에서 공항버스 첫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방식
- 가격은 인당 1.5만원 내외, 도착 시간은 5시 55분 전후로 예상
- 3안: 공항 인근 숙소
- 인천공항에서 지하철로 10분 걸리는 운서역 인근에서 숙소를 잡고 새벽에 움직이는 방식
- 가격은 인당 2만원 내외, 도착 시간은 5시 35분 전후로 예상
- 4안: 공항노숙
- 전 날에 공항에 들어가서 면세구역에서 드러눕는 방식
- 가격은 인당 “0원”, 도착 시간을 신경 쓸 필요 없이 일어나기만 하면 됨
2안은 1안에 비해 전체적으로 효율이 떨어지고, 3안은 가격 측면에서 효율이 떨어지고, 4안은 위탁수화물을 아침에 가져오는 게 낫다는 J형의 상황 때문에 결론적으로는 1안을 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4안은 한 번쯤 해볼 만은 하지만 딱히 할 짓은 아니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렇게 전 날에 잠을 자고 새벽 4시 반쯤에 나올 수 있게 준비하…려 했으나 시간도 여러모로 애매했어서 밤을 새고 말았다. 그리고 그건 운전을 맡은 D형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D형은 예정대로 차를 4시에 대여해 나왔고, 나를 조금 늦은 4시 40분에 픽업했고, J형을 5시 5분 경에 픽업했다. 비행기가 7시 반에 출발하니까, 적어도 두 시간 정도 여유를 두고 5시 반쯤에 도착하고 싶었는데.. 거리와 날씨 상의 이유로 조금씩 늦어져서 도착해보니 시각이 거의 6시에 근접해가고 있었다.
괜찮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체크인과 현장 환전이 6시 반 이전에 빠르게 끝났고, 6시 반에 오픈한 출국 게이트를 통해 빠르게 출국심사 & 보안검색을 마치고 면세구역으로 나갈 수 있었다. 탑승 게이트가 탑승동의 맨 끝에 있어서 면세구역에서 탑승동으로 넘어간 뒤 끝까지 쭉 걸어가야 했지만.. 제 시간에 면세구역에 도착했다는 게 많이 위안이 되어서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체크인이 빨리 끝난 덕택을 많이 본 것 같았다. 아침은 딱히 신경 쓰기 귀찮아서, 대충 편의점에서 생라면과 음료수를 사 갔다.


착륙할 때 날씨가 좀 좋지 않은 편이었다. 비도 많이 왔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기류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가는 동안 비행기가 많이 흔들렸어서 뜻하지 않은 약공포 무중력 놀이기구 체험을 하게 되었고, 착륙할 때도 공항 북서쪽에서 착륙하는 데에 실패해서 짧게 한 바퀴 돌아 착륙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내린 위치가 공항이랑 조금 떨어져 있었는지 탑승교 없이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이것도 조금 신기한 경험이었다. 입국 심사는 예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9시 3분 경에 하기했는데 9시 24분에 도착 구역에서 나온 걸 생각한다면…
DAY 1
먹고 구경하고 무난무난하게 돌아다니기
하카타 - 텐진

9시 반은 예상보다 이른 시간이었어서, 공항에서 대강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로 하였다. 12시 전에 텐진을 도착해도 딱히 구경할 만한 게 많이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항에 있는 <요시노야>에서 간단한 정식을 시켰다. 샐러드와 흰 쌀밥, 미소 장국, 연어와 간장 불고기의 구성이었다. 무난히 맛있었다. 근래에 쌀밥을 정식으로 먹은 적이 없었어서 꽤나 든든했다.
이후에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국내선으로 나간뒤, 지하철 공항선을 타고 텐진으로 나갔다. 숙소 체크인은 오후 4시였던지라 텐진에서 물품 보관함을 찾아볼까 하기도 했지만, 딱히 보이지 않아 그냥 캐리어를 달달 끌고 돌아다녔다.


점심을 먹기 전까지 시간도 좀 남아 있었고, 딱히 움직일 만한 곳도 없고 배도 어느 정도 차 있던 지라 <라운드원> 오락실에 왔다. 알고 보면 셋 다 오락실 죽돌이라는 사실
일본의 큰 오락실들은 대개 건물에 통째로 들어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1층은 인형 뽑기, 크레인 게임 같은 기계들이 대부분 (사실 이 점은 우리나라에서의 조금 규모가 있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오락실들도 어느 정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었고, 그 위의 층들은 아케이드 게임장, 슬롯머신, 노래방 등 오락 시설들이 층별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일본의 “오락”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 형들은 아케이드 게임을 자주 하기 때문에 아케이드 오락기가 있는 층에서 시간을 보냈다. 일본은 확실히 오락기의 갯수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고 넓은 편이다. 한국에도 이런 느낌의 오락실이 몇 개 더 있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 정발 안 한 게임도 정발 좀 해주고

점심은 근처의 <이치란>에서 라멘을 먹기로 했다. J형이 이치란을 가본 적이 없기도 했고, 나도 간만에 먹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본점을 가려 했으나 텐진에서 나카스 강 유역까지 걸어가기 귀찮기도 했고, 딱 기간과 장소를 겹쳐서 여행을 온 다른 지인에게서 ‘이치란 본점에 사람이 좀 많아서 대기가 길다’라는 얘기를 듣고 근처에 있는 분점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지인을 일본에서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다행히도 분점은 대기가 그리 긴 편은 아니었다.
이치란에 오면 주문지를 주는데, 이 주문지에 면의 굵기, 익힘 정도, 파/마늘 등의 양, 국물의 맵기 등을 체크하여 라멘을 어느 정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그리고 이 분점에서는 그냥 그릇이 아닌, 사각형 모양의 각진 ‘가마솥’ 그릇에 라멘을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꽤나 흥미로웠다.
3년 반 전에 오사카를 갔었을 때에, 첫 날 저녁에 도톤보리쪽에서 갔던 이치란에서는 ‘돈을 아껴야겠다’라는 명목으로 딱 라멘 한 그릇만 시켜 먹었었다. 여행이 끝나고서 돌이켜보니 ‘이왕 여행 가는 건데, 돈을 더 쓰더라도 조금 더 많이 먹고 많이 즐겨볼 걸’이라는 후회가 너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에 대한 후회를 조금이라도 만회하려 하듯, 공기밥도 추가하고 코카콜라도 시켰다. 더 많이 시키고 싶었지만, 공항에서 먹었던 아침이 다 꺼지지는 않은 상태여서 이 정도로 만족했다.
맛은 정말 무난하고 준수하고 맛있는 라멘이었다. 코카콜라가 유리병 째로 나오는 것도 하나의 흥미로운 점이었다. 특히나 본인 스타일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강점으로 다가왔다. 엄청 독보적이고 특출난 맛은 아니지만, 왜 이치란 라멘 밀키트가 돈키호테에 쌓여있는 지 정도는 체감할 수 있었다.

밥을 먹고서는 조금 걸어서 만다라케에 가서 여러 종류의 굿즈들을 관람했다. 책, 포스터, 피규어, 그리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캐릭터 굿즈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매장이 넓고 취급하는 캐릭터와 굿즈의 종류가 많아서인지 둘러보는 데에도 한참 걸렸다. J형은 유희왕 카드에 매우 관심이 많다. 만다라케 윗층에 있는 카드샵에서 카드를 무진장 지켜보고 있었다. 참고로 (실질적으로 일본에서 놀며 보내는 시간인) 3일 중에 카드샵을 안 간 날은 없었다.


어느덧 시간은 대략 오후 4시쯤 되어, 체크인하고 짐을 두기로 결정했다. 만다라케에서 나와서 원래 둘러보려 했던 카드샵에 갔는데, 안타깝게도 닫혀 있어서 그냥 바로 숙소로 왔다. 첫 날 체크인했던 숙소는 텐진 인근에 있는 무인 숙소였다. 벙커 베드를 처음 봤는데, 실제로 보니 뭔가 굉장히 낭만있었고 계단이 가팔랐다. 그리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일본의 숙소들은 정말 딱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만 만들어두는 것 같았다. 방의 여유 공간은 침대를 제외하고는 작은 소파 앞과 출입문-화장실을 잇는 이동 경로가 전부. 그래서 대체로 숙소들이 면적이 큰 편은 아니지만, 좋은 말로 하면 아늑하다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우리는 대략 짐을 풀어두었고, 피곤했는지 전날 잠을 안 자고 왔던 나랑 D형은 낮잠 겸 1시간 정도 골아 떨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J형은 우리가 깨워도 일어나지 않자, 텐진을 조금 구경할 겸 먼저 나가있었다고 한다.

낮잠에서 깨고 난 뒤 대충 시간을 보내다가 미리 대기를 걸어둔 회전초밥집으로 향했다. 일본에서 먹는 회전초밥은 어떨까 싶긴 했지만, 사실 먹고 나서 느낀 건 한국의 회전초밥집과 그렇게까지 큰 차이는 없다는 것이었다. (맛이 없었다는 게 아니다. 맛은 굉장히 준수했다!) 역시 한국이든 일본이든, 초밥집은 잘 하는 곳을 가는 게 베스트일 것 같다. 물론 일본에서 회전초밥을 먹는다는 느낌이 좋은 것도 있겠지만.

밤에도 조금 텐진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야식을 사고 숙소로 돌아와 형들이랑 이야기를 하면서 야식을 먹었다. 술은 간단하게 한 잔씩만 했다. 역시 스트롱 제로는 맛있더라. 이후에 딱히 별 다른 일은 없었고, 한 새벽 1~2시 경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신나게 하다가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날 수 있다면, 오호리 공원 쪽을 산책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와 함께 첫째 날 밤을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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